1183수요 | 욜2.28
요엘 맥잡기
포 로(3.2-3)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노예로 매매(3.4-8)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발 아래(3.17)
다가올 심판을 바라보는 요엘의 통찰이 눈부시다. 이를 위해 메뚜기 예화가 마치 이미 경험된 것처럼 생생하게 등장한다(1장). 이렇듯 미래는 하나님의 임박한 진노 아래 놓여있다(2장).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 너머에 있는 회복은 늘 열려있다(3장). 과연 이스라엘은 선지자의 탄식에 어떻게 반응할까. 동시에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또 무엇일까: 이스라엘은 회개할 것인가. 하나님은 저들을 용서하실 것인가.
선지자의 탄식(1.1-2.11): 애곡하라!
서 언(1.1)
메뚜기 재앙(1.2-20): 현재
여호와의 날(2.1-11): 아직
땅의 모든 파란 것을 삼켜 버리는 메뚜기 재앙(1.2-7)과 죽어 버린 자연재앙(1.10-20)은 역사적 사실이면서 이것이 단순한 자연재앙을 넘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즉 하나님과의 단절이라는 심판을 예고한다(1.9-10,12-16). 이것은 ‘여호와의 날’(1.15), 즉 하나님의 심판을 알리는 하나의 전조요 시작된 하나님의 재앙의 서곡이다. ‘여호와의 날’(2.1-11)은 심판인데,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도 예외일 수 없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의 가능성(2.12-17): 회개하라!
여호와의 날(1-11)
이스라엘의 가능성(12-17)
여호와의 응답(18-32)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이 오고 있다. 하나님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기 위해 전쟁의 나팔을 분다(1-11). 하지만 이 심판은 이미 결정된 것이 아니라 예고이기에 이를 돌이킬 수 있는 가능성을 내다본다. 이것이 회개를 촉구하는 선지자의 마음이다(12-17). 심판은 결정되어 곧 실행될 것이다. 이는 결코 취소될 수 없다.
그러나 이 심판 중에도 구원의 가능성은 금식과 참회라는 기도의 문을 통해 열려있다(12,17). 하지만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간다고 해서, 즉 마음을 찢는 진정한 회개를 한다고 해서 구원은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영역일 수 밖에 없다: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주께서 뜻을 돌이키시고 가엾게 여기셔서’, 14a).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후회하실 수 있으신 하나님이시다(14). 이러한 기대는 소아와 젖먹는 자는 물론 결혼한 신혼부부까지 온 이스라엘이 회개의 자리에 나아오도록 도전한다(15-17). 오직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맞이하게 하는 은혜의 부스러기다. 진노 중에라도 희망은 있다! 마음을 찢는 애통만이 ‘여호와의 날’ 앞에 심판이 아닌 구원으로 설 수 있는 최종적인 희망이다. 이 희망을 향해 요엘은 움직인다.
하나님의 응답(2.18-3.21): 회복하리라!
응답1: 용서와 회복(2.18-27)
응답2: 성령과 구원(2.28-32)
열방에 대한 심판과 경고(3.1-15)
이스라엘의 회복(3.1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