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5수요 | 행28.17-31
로마행전, 그리고 사도행전 29장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30-31)
바울이 살았던 로마에서의 2년을 묵상한다. 이 일은 먼저 로마에 사는 유대인들을 청하여 자신이 이곳 로마에 죄수의 몸으로 온 배경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17-20).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님의 복음에 대한 계속되는 바울의 가르침을 들었으나(21-23) 역시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들로 나누어졌다(24-28). 그럼에도 2년을 하루같이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헌신한다.
가택연금 상태이긴 했으나 자유롭게 사람들의 출입이 가능했기 때문에 한편으론 [옥중서신]을 쓰면서, 또 한편으론 로마 군인을 비롯하여 자기에게 오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며 … 가르치”는 일에 전적으로 몰두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그를 젊을 때는 아시아와 유럽을 누비며 1~3차 전도여행을 통한 사역을 하게 하시더니, 이제 초로(初老)의 나이에 접어든 바울을 주치의 누가(Luke)의 도움을 받아 심신을 돌보게 하시고, 그러면서 복음에 전념하도록 하신다.
방해받지 않았다(‘akolutos’, 30-31).
“전파하며 …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31)
바울의 로마행전은 길고도 험한 고난의 여정이었다. 그는 부르심을 받을 때 받은 말씀(9.15-16)을 따라 헌신의 삶을 살아가던 순례자의 노정에서 로마보기를 선언한다(19.21). 이를 주님께서 격려하셨고(23.11, 27.24), 마침내 로마에 들어온다(28.16).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오는 길은 여러 해가 걸렸고(21장 → 28장, 24.27, 28.11), 무수한 죽음의 고비들을 넘어야 했던 그야말로 목숨을 건 사투였다. 영광을 받으려 가는 길도 아니었고, 지금까지 한 수고에 대한 안식을 누리려고 가는 길도 아니었고, 그러니까 사사로운 어떤 계획을 위해 간 로마가 아니다.
바울이 로마보기를 원했던 것은 그가 로마에 오기 전에 기록해서 로마교회에 보낸 로마서에 잘 나타나 있다. 먼저 영적인 축복을 나눔으로써 로마교회 성도들과 바울 사이에 피차 믿음을 강하게 하기 위함이었다(롬1.11-12). 또한 복음을 전함으로써 로마에서도 열매를 맺기 위함이었다(롬1.13,15). 이렇듯 바울의 로마행전은 그의 가슴 안에 품어진 가장 강렬한 소망이었다(롬15.22-33). 이러한 그의 비전과 꿈은 그 어떤 어려움과 방해도 견디고 이기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동시에 주님의 뜻임을 확신했기에 늦어질지라도 열정을 앞세운 나머지 밀어붙이는 식으로 서두르지도 않았고(27.9-10), 로마에 온 이후에도 변함없이 살 수 있었다.
누가는 사도행전을 마무리하면서 헬라어 “방해받지 않았다”(‘akolutos’)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는 지금 셋집에 머물고 있다. 셋방살이다. 재판을 기다리는 미결수(未決囚)의 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어떠함을 핑계삼아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열중쉬어 하고 있지 않다.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빌1.12-13)
사도행전은 이렇게 28장 31절로 끝난다. 바울은 2년을 셋방살이 생활을 하면서 복음을 증거하고 있을지라도 “담대히 … 전파하며 … 가르치”(31)며 살 수 있었다. 얼른 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이고, ‘이게 성령행전이란 말인가’ 싶고, ‘이처럼 사는 것이 복음생활인가’라는 회의 아닌 회의가 들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