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3수요 | 시11.1-7
하나님이 답(答)이다.
문제에 대한 이해(1-3)
해답에 대한 믿음(4-7)
나 – 마음이 바른 자(2) - 의인(3,5,7) - 정직한 자(7)
너희 – 악인(2,5,6) - 폭력을 좋아하는 자
여호와 – 인생을 통촉하시고(4) - 감찰하시다(4,5)
→ 의인 – 좋아하시나니 – 여호와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 악인 – 그물을 던지시리니 -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다윗은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게 분명한다. 왜 그럴까? ‘너희’(1)와 ‘그들’(4,6)은 또 누구일까.
악인의 도전
다윗은 지금 악인에게 포위 되어 있다. 다윗임에도 말이다. 다윗처럼 위대한 신앙과 삶을 살아가는 자에게도 악인의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신자란 본시 악과 악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베드로의 통찰이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아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벧전5.8-9)
악인의 화살이 다윗의 심장을 겨냥하고 있다(2). 이를 본 ‘너희’가 움직인다(1): “새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그런 급박한 때에 어디론가 피해야 할 상황이다. 과연 그곳이 어디인가?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점은 이미 다윗이 “여호와께 피하였거늘”임에도 너희는 또 다른 해법을 제시하고 있음이다. 위기는 그야말로 최악이다. 다윗의 사람들까지 하나님이 아닌 다른 대안을 찾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게 결코 예사롭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밖으로는 악인이 포위망을 좁혀 오고 있는데, 안에서는 ‘하나님으로는 안 된다’는 제안이 공론화되고 있다.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제안, 이것이 어찌 다윗만의 형편일까. 내 안에도 또 다른 나인 ‘너희’가 자리 잡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롬7.23).
의인의 승전
다윗은 산으로 간 도망자가 아니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은 하나님께로 간 도피자로서 문제 앞에 선다(1). 이것이 생명의 위기로부터 ‘터’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길임을 알았기 때문이다(3). 악인은 물론이고(2), 가까이에 있는 ‘너희’까지 흔들리는 상황에서 다윗은 오직 하나님(1), “그 성전에 계시”는 하나님께로 나아간다(4). 다 아는, 너무도 뻔한 평범한 방향인 것이지만 그러나 이것이 다윗이 따르는 신앙이자 해법이다.
다윗에게는 늘 하나님이 있다. 가장 고통스럽고 힘들 때 하나님이 생각나는 사람은 복되다. 마침내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한다(6).
위기 앞에 설 때 무엇보다 하나님이 보여야 한다. 이게 해답이다. 문득 다윗처럼 영적 전쟁터에 서 있는 나를 생각한다. 이럴 때 하나님께 피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뭘 뜻하는 것일까. 생의 한 중심에서 만나는 위기는 삶의 전부를 흔들어 버리곤 한다. 이때 하나님께 피하는 자가 복되다. 이러한 하나님의 식(式)이라면 해 볼 만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