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7수요 | 시22.1-21
고난송(苦難頌):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고난의 애가(哀歌, 1-21)와 감사의 애가(愛歌, 22-31), 그 사이에 기도라는 보석이 빛나고 있다. 기도는 고난이 가져다 준 절망과 고통을 이기게 했고, 또한 고난을 바라보는 눈을 새롭게 해 주었다(1-21). 동시에 기도는 마침내 고난 너머에 있는 감사를 열매 맺게 했고, 감사를 자기 공로로 취하지 않고 주를 찬송하게 만들었다(22-31).
고난송(苦難頌, 1-21):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A 고 난1(버림받음, 1-10)
•하나님(1-5) - 고난(1-2), 회상(3-5)
•인 간(6-10) - 조롱(6-8), 회상(9-10)
B 기 도1(11)
A' 고 난2(12-18) - 많은 황소, 바산의 힘센 소들(12) / 부르짖는 사자(13)
사망의 진토 – 물/뼈/마음/속/힘/혀(14-15) / 개들, 악한 무리들(16)
B' 기 도2(19-21) - 칼, 개의 세력(20) / 사자 입, 들소 뿔(21)
시인은 하나님과 사람으로부터 버림받는 지난날들의 고난이 가져다 준 이중고 속에서 처절하게 몸부림친다(1-10). 긴 고난의 틈바구니(A-A') 속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기도 때문이다. 그래서 기도 없는 한 민족보다 기도하는 한 사람이 더 강하다고 하지 않는가.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깝고 도울 자 없나이다.”(11)
하지만 기도는 쏜살처럼 날아가 버리고(11), 다시 ‘사망의 진토’(15)에 에워싸여 바싹 말라간다(12-15). 그뿐인가. 시인을 고난스럽게 만든 ‘저희’(악한 무리들)는 정작 그것을 히죽거리며 즐기고 있다(16-18). 과연 기도는 허공에 사라져버린 그런 값싼 것일까.
시인에게서 놀라는 것은 그런 와중(A-B-A')에서도 다시 기도(B')의 두레박을 고난의 우물에 계속해서 던지고 있음이다: “여호와여 나를 멀리 하지 마옵소서!”(19a) 이제 시인은 하나님의 힘이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실 분임을 고백하면서 이제껏 자신을 고난의 우물에 처박아 넣었던 칼(개의 세력, 사자 입, 들소 뿔) 앞에 정면으로 서서 기도한다(19-21).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까지도 버림받은 것 같았던 칠흑같이 어두운 고난의 터널을 하나님을 향한 기도(B-B')로 통과해 왔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시인은 자신의 고난 속에서도 여전히 동일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그의 생(生)은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반전되기 시작한다(21b).
[22편] → [복음서]
1 마27.46, 막15.34
7 마27.29,39
8 마27.43
15 요19.28-29
17 요19.33-34
18 마27.35, 막15.24, 요19.24
위 말씀들은 모두 고난송(苦難頌, 1-10,12-18) 안에서 노래된다. 놀랍게도 신약(복음서)은 공히 이 구절들을 ‘고난 받는 종’(메시야)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처절한 고난의 삶에서 실연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신약, 즉 복음서 기자들은, 혹은 예수님은 이를 고난 받는 종의 노래로 끌어당기는 일에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때문에 메시야 가계(家系, 족보)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 가운데 하나인 다윗이(마1.1) 자신의 삶에서 이를 예비하고, 그리스도께서 이를 성취하신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빌2.5-11).
시인이 승리했고, 주님이 이미 다 이루셨고 또 승리하셨기에, 그 뒤를 따르는 우리(‘나’) 역시 동일한 멜로디를 따라 내 인생에 그려진 악보를 하나의 시(詩)로 담아 이 노래를 주께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b) 그분이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마28.20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