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1수요 | 대상9.1-34
예루살렘 거주자들: 出포로기
북왕국 이스라엘(5.25-26)에 이어 남왕국 유다(1)까지 멸망하고 만다. 역대기는 이렇듯 포로기라는 앵글을 통해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시 조망하는 방식을 취한다. 찬란했던 다윗왕조의 역사(대상10.13-대하36.21)는 멸망으로 그 끝을 고한다. 아브라함과 다윗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종점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다 있었다. 즉, 율법과 성전, 제사장과 선지자와 왕 등 하나님을 통해 모든 것을 다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범죄하였고, 그 결과 나라의 문을 닫게 된다(1, 5.25-26).
영광스러운 열왕의 역사가 포로기로 끝장이 나버렸다. 북왕국 이스라엘도 그렇고(5.25-26), 남왕국 유다도 마찬가지다(9.1-2).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왕국의 역사를 이처럼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이 이처럼 범죄(犯罪)하여 하나님의 진노하심 아래로 떨어졌는데, 하나님은 다시 저희를 회복시키신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둘(포로와 귀환)을 낳았고, 그 사이에 또 무엇이 들어있고, 이를 통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깨닫게 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이스라엘이 놓치지 않고 붙들어야 할 메시지는 무엇일까.
바로 이 자리에서 지난 이스라엘의 역사를 회고한다. 잠시 밝히는 듯하다가 추락한 사울왕가의 역사(9.35-10.14)는 그런 의미에서 이스라엘이 늘 기억해야 할 하나님의 경고의 나팔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놓고 볼 때 저들 역시 사울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저들로 하여금 다시 고토(故土)로 돌아오도록 은혜를 베푸신다(2). 이스라엘은 죄를 통해 역사(족보)를 단절하게 만들지만 하나님은 은혜를 통해 족보(역사)를 연속되게 하신다. 이것이 9장을 비추는 빛이다.
出포로기 사람들(1-34)
예루살렘에 돌아온 사람들(1-2)
12지파(1-9)
제사장(10-13)
여다야/여호야립/야긴/아사랴/아다야/마아새
레위인(14-34)
므라리 자손: 유사와 재판관(14-16)
그핫 자손: 성전 문지기(17-27, 6.22) / 성전 기구 관리(28-32): 추가적 직무들
찬송하는 자(33-34)
BC 586년 남왕국 유다가 범죄함을 인하여 멸망을 한다(1,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더니”). 이로써 일단 이스라엘은 문을 닫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나님은 저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신다(2_“그 본성으로 돌아와서 그 기업에 거한 자는”, 3_“예루살렘에 거한 자는”).
본문은 이때 돌아온 자들을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9.1-2, 대하36.22-23). 여기까지가 역대기가 말하고자 하는 연대(年代)다. 그러니까 아담에서부터 통일왕국(사울-다윗-솔로몬, 대상1.1-대하9.31)을 지나, 분열왕국으로(대하10.1-36.10), 그리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5.25-26)과 남왕국 유다의 멸망(1, 대하36.11-21)까지가 역대기가 그리고자 한 역사다.
무엇이 한 나라의 흥망성쇠(興亡盛衰)의 이유인가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저들을 다시 용서하시고 나라를 회복케 하심을 역대기 독자들로 하여금 깨닫게 되기를 기대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게 한다. 무엇보다 다윗과 솔로몬과 남왕국 유다의 역사, 그리고 파란만장(波瀾萬丈)했던 포로기를 살다가 귀환한 후손(대하36.22-23 → 대상9.1-34), 그러니까 살아있는 자들(9장의 사람들)이 이미 죽은 자들의 역사를 통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역대기는 바로 이 지점에서 다시 과거의 역사를 회고하고자 한다(대상9.35-대하36.21).
특별히 레위인들(14-34)의 귀환은 예루살렘 성전의 회복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다. 유사와 재판관들(14-16)을 시작으로 성전 문지기들(17-27, 6.22), 성전 기구 관리들(28-32), 찬송하는 자들(33-34)을 중심으로 이제 다시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회복이라고 할 수 있는 영적(靈的) 회복을 주도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역대기 기자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