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9수요 | 렘42.1-44.30
애굽변주곡: 남은 자들 vs 예레미야
A 남은 자들의 질문(42.1-6) : 우리에게 이르시는 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다!(5a)
B 예레미야의 대답(42.7-22) : 너희는 애굽으로 가지 말라!(19)
A' 남은 자들의 응답1(43.1-7) : 애굽 땅에 들어가(7a)
B' 예레미야의 응답1(43.8-44.14) : 유다 땅에 돌아올 자가 없을 것이라!(44.14b)
A'' 남은 자들의 응답2(44.15-19) : 하늘 여왕에게 분향하고 … 전제를 드렸느냐!(19)
B'' 예레미야의 응답2(44.20-30) : 애굽 땅에 있는 유다 모든 사람이 … 멸절되리라!(27b)
제1악장(42.1-22)
남은 자들의 질문(1-6, A)에 대한 예레미야의 대답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 날을 기다리라(7-13)는, 그러나 동시에 ‘애굽’(14-19)으로 가지 말라는, 만일 이를 어기면 그곳(애굽)에서 살아남거나 다시 이곳(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자 없으리라는 분명한 메시지다.
제2악장(43.1-44.14)
하지만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거부된다(43.2-3). 그리고 ‘모든 교만한 자’(43.2a), 즉 “유다의 남은 자 곧 쫓겨났던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유다 땅에 살려 하여 돌아온 자”(43.5), “모든 사람과 선지자 예레미야와 네리야의 아들 바룩”(43.6b)까지 요하난 일행에 의해 “애굽 땅에 들어가”(43.7)게 된다. 아마도 하나님(예레미야)이 금하신 애굽행을 끝내 결행하는 ‘요하난과 모든 오만한 자’(43.2a)들은 예레미야가 애굽으로 가는 모양새를 만들어서 자신들의 애굽가기의 정당성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려 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요하난은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선한 멜로디를 할 수만 있다면 애굽 멜로디에 묻어 버리려고 집요하게 움직인다(43.1-7, A'). 하지만 요하난 일행이 선택한 멜로디는 우상숭배의 죄로 말미암아 멸망을 당한 예루살렘과 유다의 멜로디의 연장선에 서서 우상숭배를 계속적으로 반복하는 죄음(罪音)이었다. 여기에 대한, 그리고 이미 애굽(믹돌, 다바네스, 놉, 바드로스 지방에 거하는 자, 44.1)에 먼저 와 있는 유다인들에 대한 선지자의 질타(44.1-10)는 저들의 결국이 어찌 될 것이라는 점을 확고하게 드러낸다(B'). 죄행을 언행하는 요하난 멜로디가 고집스럽게 변하지 않듯, 저들의 죄악을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예레미야)의 멜로디 역시 한 음정의 떨림도 없이 변함없이 선포된다(AA' vs BB'). 이렇듯 ‘애굽’행 불신앙에 대한 예레미야의 응답은 비수(匕首)가 되어 요하난 일행의 심장을 정확하게 겨냥하고 있다(44.1 → 11-14).
제3악장(44.15-30)
선지자의 코멘트는 또 다시 거부된다(44.16):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하는 말을 우리가 듣지 아니하고.”, 그리고 ‘본래 하던 것’(44.17a) 곧 “우리와 우리 선조와 우리 왕들과 우리 고관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던 대로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리라!”(44.17b)며 예레미야의 메시지(B')에 재응답한다(44.15-19, A'').
선조들은 예루살렘에서 멸망하였고 후손들은 애굽에서 멸망할 것인데, 문제는 그 이유가 동일하다(44.20-23). 이미 나라는 멸망했고, 바벨론과 애굽(BB'B'')이 이처럼 흔들림 없이 극명하게 선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애굽에 내려간 ‘아내와 남편’(남녀 모든 무리, 44.15,19,20) 역시 죽음을 향한 멜로디를 언행(言行)하는 일에 요지부동이다. 다시 애굽변주곡에 대한 예레미야의 재응답(B'')이 더 강화된 심판으로 선언되고 -“그들에게 재난을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니 애굽 땅에 있는 유다 모든 사람이 칼과 기근에 망하여 멸절되리라.”(44.27)- 있는 것, 이것은 ‘애굽’(44.24,26,27,28,30)을 짝사랑한 죄의 보응(값)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