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1수요 | 히11.1-6
믿음으로 보며 살라!
구약을 신약과 동일하게 구원사적 [믿음사관](信仰史觀)으로 보는 것은 절묘하다. 믿음은 신약의 전유물이 아니다. 율법과 할례와 제사를 말하는 구약이 그 무엇보다 믿음을 언행하고 있어서다. 이 점이 히브리서 11장이 가지는 신학적 위치다. 히브리서의 독자들인 히브리(유대)인들은 고통과 핍박 때문에 다시 옛 언약인 동물의 피를 통한 제사법으로 돌아가려는 유혹을 받고 있었다(6.4-6, 10.26-29). 이미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은혜 안에(아래) 있는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10.19).
바로 이처럼 교차로에 서 있는 유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바로 그 믿음으로 사는 길(1.1-10.18 → 10.19- )을 믿음의 선진(先進)들을 통해, 오늘은 그 가운데서 에녹과 노아의 생애를 통해 가르치면서, 다시금 믿음으로 사는 길을 함께 걸어가도록 격려한다. 믿음이란(1-3) 하나님을 예배하면서(아벨),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에녹).
믿음이란?(1-3)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대한 실물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1-2, 현대인의성경).
성경은 인격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믿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관계되지 않는 믿음은 단지 인간의 신념에 불과할 뿐이다.
아 벨(4) - 예배하기
인류 최초의 예배가 창세기 4장에 소개된다(창4.1-8). 궁금한 것은 과연 저들은 어떻게 제사(예배)를 알았을까 하는 점이다. 하나님은 친히 아담에게 제사를 가르치셨고, 또 명하셨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가인과 아벨은 아마도 부모로부터 하나님을 예배하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롬10.14-15).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4a)라는 말에는 아벨이 하나님께 ‘믿음으로 … 제사를’ 드리는 시작에서, 그래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의 완성까지 제사의 전 과정(process)이 들어있다. 하나님은 이 전체를 다 보고 계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제사란 준비, 마음, 태도, 자세에서 ‘더 나은 제사’가 결정된다.
가인은 불행하게도 바로 이 예배자다움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기준에 이르지 못하였다. 그는 예배 전(前)에와 예배 중(中)에 ‘더 나은 제사’와 ‘그 예물’이 일치하지 않았으며, 그랬기 때문에 결국 예배 후(後)에도 예배와 삶을 일치시키는 일에 실패한다(창4.1-15).
에 녹(5-6) - 동행하기
에녹에 대한 기록은 극히 제한적이다(5-6, 창5.21-24, 유.14-15). 하지만 그는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자식이나 가정 없이 홀로 수도원에서 되어지는 삶은 아니다. 에녹은 자녀를 양육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에 그의 생애가 달라졌다. 므두셀라를 낳은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어떤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것을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축복의 기회로 삼았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5b)로 살았다는 의미인데, 이게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믿음’ 때문이었다. 한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믿음인데, 이처럼 믿음을 가진 자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서는 첫째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 믿어야”(6a) 한다. 둘째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賞)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6b) 한다. 이것이 하나님만으로 사는 사람, 하나님이 전부인 사람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