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0수요 | 엡5.22-6.9
새로운 파트너쉽(partnership)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8)
새사람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사회(공동체)의 모습이 그려진다. 에베소서가 쓰여질 당시는 여자와 노예(종)들은 사고파는 물건과 짐승처럼 취급되던 때였고, 여자로 태어나지 않게 하신 것을 감사하던 그런 별난 시대였다. 이때 [바울복음]은 구속 받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빛의 자녀라는 영원한 가치를 어두움(옛사람)으로부터 견인해 낸다. 한편 종(고용인)과 상전(고용주) 사이에서도 “주께 하듯”(5.22, 6.7)이라는 영적 원리가 동일하게 흘러야 한다.
남편과 아내(5.22-33)
아내는 주님께 순종하듯 모든 일에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고(22-24),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25-33).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부부사랑을 그리스도와 교회간의 사랑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바치신 사랑이다(25). 주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5.27, 1.4b 참조)었다. 바로 이와같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기를, 그것도 자기 몸같이 하라 하신다(5.28). 주님이 교회를 위해 이처럼 사셨듯이 남편이 아내를 위하여 자신을 바침으로써 교회 같은 가정, 가정 같은 교회가 세워지게 된다(5.32).
남편 존경하기와 아내 사랑하기는 같이 간다. 아내는 주님께 하듯 남편에게, 남편은 주님이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셨듯이 아내에게 각각 존경과 사랑을 통해 섬기며 ‘피차 복종’(5.21)하며 살아야 한다. 아내가 하는 만큼, 남편이 하는 것에 따라 조건적으로 명령되고 있지 않다.
부모와 자녀(6.1-4)
부모에 대한 자녀의 이중의 의무는 순종과 공경이다. 이것은 공히 ‘하라!’는 적극적인 명령이다. 왜 부모님께 순종해야 하는가. 먼저 자식의 마땅한 도리라는 성경은 명령한다: “이것이 옳으니라.”(6.1a) 또한 복 받는 비결이기 때문이다(6.3). 잘됨(A)과 장수(B, 출20.12)라는 두 약속의 연결성(A+B)을 주목한다. 이것은 자녀의 성경적 도리를 다 한 후에 결과적으로 주어지는 복이다.
좋은 부모는 “자녀의 감정을 건드려 화나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계와 가르침으로 잘 기르”(4, 현대인의성경)는 자이며, 이럴 때 그 자녀 역시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람으로써 좋은 부모로 세움을 입게 될 것이다(4.13-16). 나 한 사람이 새사람으로 건강하게 살면 가정이 주님의 몸된 교회처럼 세워져간다는 이 축복을 나에게 주신 가정 안에서도 누리게 하시기를 기도한다.
상전과 종(6.5-9)
당시의 한 가정의 시스템은 부부와 자녀와 종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하나인 복음(갈3.28)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다 한 형제가 되는 새로운 관계를 요구하게 됨으로써 기존의 질서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특히나 종과 상전의 관계가 무너지는 이 새로운 질서는 로마제국의 입장에서 볼 때 국가(제국, 사회)의 존립을 흔들 수 있는 위험 요소였다.
지금 바울은 이런 사회적 배경 안에서 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5-8). 이것이 주인과 종이 복음 안에서 만들어가는 새로운 삶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종들에게만 요구되는 명령이 아닌 주인에게도 복음의 명령을 하고 있음이다(9). 기존의 질서의 틀(형식)이 그대로 유지되는 듯하지만 그러나 내용적으로 볼 때에는 이미 주종(主從)의 관계는 깨어진 셈이다. 이것이 6장 9절의 힘이다: “성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그리스도를 경외(敬畏)함으로 피차 복종하라!”(5.21)
아내와 남편의 관계는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와 같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5.23)라는 말씀은 가정(부부)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높고 귀한가를 짐작하게 한다. 아내도 남편도 공히 자신을 위해서 살거나, 또 이를 위해 배우자가 필요한 게 아니다. 배우자와의 관계 속에 있고, 배우자를 위하고, 또한 상대방을 위해 자신의 태도와 삶의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한 몸’이다(5.31). 이처럼 하나님은 아내(남편)를 통해 남편(아내)이 복되게 되기를 기대하시는 것 같다.
나 또한 자녀의 자리에 있다가 부모가 되었다. 자녀도 연습 없이 바로 실전이었듯이 부모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세상에는 하다가 틀리면 고쳐가며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좌충우돌(左衝右突) 하면서 더 멋지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것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인생은 그렇지 않다. 물론 실패하고 넘어진 것들을 통해서도 소중한 것들을 배우고, 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