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5수요 | 살전2.1-12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기
데살로니가로 가기 전에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던 터라(2a) 어쩌면 다시 고난 속으로 뛰어든다는 것이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도는 환난이 기다린다고 하나 주님이 친히 고난을 받으셨던 것처럼 자신의 생명을 귀하다 하지 않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것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니었다(1).
복음전하기(1-6): “우리의 … 아니요 … 아니라.”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3a)
권면은 …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3b)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4)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5)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6)
그는 데살로니가에서의 ‘복음전하기’에서 행하지 않았던 것들을 추억한다. 바울이 이처럼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은 당시에 이런 어이없는 언행으로 사람들을 속이는 무리들이 많았고, 따라서 복음이 이처럼 값싸게 비취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비량(自費量)까지 하면서 이처럼 “아니요 … 아니라”(3- )를 통해서 복음의 의미(가치)를 살렸던 것이다: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9)
먼저, 잘못된 생각이나 불순한 동기나 속임수로 사역하지 않았다(3). 그랬기에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2b)서도 겉과 속을 모두 온전히 지킬 수 있었다.
둘째로, 복음을 전함에 있어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4a), 또한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6)고 사역하였다.
셋째로, 사역을 함에 있어서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5)하였다.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복음행하기(7-12): “우리는 … 하였으니”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7b)
하나님으로 복음뿐 아니라 … 목숨까지도 … 주기를 기뻐함은(8)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9a)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9b)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10)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11)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동시에 그 복음대로 사는 자로서의 자기 자신을 하나님과 데살로니가교회를 증인 삼아 고백한다(5,10). 그러면서 그는 이를 위해 유순한 자 되어 ‘유모’(7)처럼, 주의 복음과 자기 목숨까지 주기를 즐겨하면서(8), 또한 저희에게 누릴 끼치지 않게 위해 자비량으로 살아가면서(9), 아비가 자녀에게 하듯이(11) 복음을 전하며 복음으로 살았음을 말한다.
바울은 이 말을 할 정도로 그는 복음대로 사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 그는 이를 위해 피나는 자기와의 싸움을 했고, 하나님과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그리고 그의 복음을 듣는 자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복음대로 살기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10b). 한 예로, 전도비마저도 복음이 복음 되는 일에 방해가 된다면, 자비량(自費量) 하면서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12)
‘그리스도의 사도’(6a) 바울은 생명을 걸고 사역하였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복음이 조금이라도 오해(비방)를 받게 되는 일이 없도록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철저하게 생활하였다. 왜냐하면 자신을 통해서 흘러가는 복음이 자신의 죄(무능력, 나태함, 속임수, 불순한 동기, 아첨의 말, 탐심의 탈, 사람의 영광 등) 때문에 왜곡되거나 무력해지고, 그래서 주님과 교회가 욕을 먹는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철저한 프로의식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 바울은 주님을 위해 모든 초점을 맞추는 사람이었다. 바울에게는 이러한 복음의 프로‘다움’이 넘쳤다. 그는 끝까지 이 마음을 잃지 않았다. 복음과 교회(성도) 때문에 “고난과 능욕을 … 많은 싸움 중에”(2)도 불구하고 말이다.